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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원료의 위험한 재활용: 항생제 폐사어 사료 제조와 사료관리법 위반 판결
대법원은 항생제 '엔로플록사신' 성분이 남은 폐사 양식어로 사료 175t을 제조·판매한 제주 모 수협 관계자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불법 원료 사용 외에도 사료 성분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으며, 대법원은 A씨가 직접적인 '제조업자'는 아닐지라도 양벌규정에 따른 '행위자'로서 형사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수협 법인 역시 벌금 2천만 원이 확정되었다.
1. 독이 된 재활용: 엔로플록사신 잔류 폐사어의 사료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엔로플록사신 성분이 함유된 폐사어를 사료 원료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엔로플록사신은 강력한 동물의약품용 항생제로, 양식어류의 질병 치료에 사용되지만 인체 섭취 시 내성 유발 등의 위험이 있어 출하 전 반드시 90일 이상의 휴약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A씨는 이러한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항생제가 잔류하는 폐사어를 사용하여 무려 175톤의 사료를 제조했다. 이는 양식 생태계와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식탁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반윤리적 행위라 할 수 있다.
2. 소비자 기만과 불투명한 성분 표시: 육분 사용 미표기
A씨의 범행은 원료의 부적절성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21년부터 약 2년 넘게 사료 제조 과정에서 육분(肉粉)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 용기나 포장에 이를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 사료의 성분과 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사료를 구매하는 양식업자의 알 권리이자 품질을 보장하는 법적 의무다. 이러한 성분 표시 위반은 불량 사료의 유통을 은폐하고, 소비자가 사료의 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기만적인 행위로 지목되어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다.
3. 대법원의 법리 해석: '제조업자'와 '행위자'의 구분
상고심의 주요 쟁점은 수협 직원인 A씨를 사료관리법상 처벌 대상인 제조업자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제조업자를 사료 제조·판매업의 권리와 의무가 귀속되는 사업주로 한정하며, 단순 직원이나 대리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제조업자는 아닐지라도, 사료관리법 제35조 제1항의 양벌규정에 명시된 실제 행위자로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즉, 법인의 대리인으로서 위법 행위를 주도했다면 법인과 별개로 행위자 개인 역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 원칙을 확고히 한 것이다.
4. 법인과 개인의 공동 책임: 양벌규정과 실효적 처벌
재판부는 A씨 개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한편, 해당 수협 법인에도 벌금 2천만 원을 부과했다. 이는 직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조직에도 책임을 묻는 양벌규정의 취지를 살린 판결이다. 특히 공신력이 생명인 수협 조직에서 조직적인 불법 사료 제조가 묵인되거나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수산업계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판결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법인 차원의 철저한 내부 통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함을 시사하고 있다.
5. 먹거리 안전망 강화: 사료 관리 체계의 혁신 과제
불량 사료는 결국 건강하지 못한 수산물을 만들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건강 위협으로 되돌아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폐사어 처리 프로세스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폐사어가 사료 원료로 유입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모니터링하고, 항생제 잔류 여부를 무작위로 검사하는 등 선제적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사료관리법상의 처벌 수위를 현실화하여 불법 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법적 제재의 비용이 훨씬 크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는 타협할 수 없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