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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코미디의 전설, 남성남 10주기: '왔다리 갔다리' 춤에 담긴 한 시대의 희로애락
😂 영원한 콤비의 빈자리, 그리고 무대에 바친 한 평생
**목차**
- **1. 영면 10년, 시대를 풍미했던 웃음의 거장**
- **2. '왔다리 갔다리' 춤에 담긴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
- **3. 무대에 대한 끝없는 열정, 그리고 마지막 소망**
- **4. 콤비의 빈자리, 깊은 슬픔을 남기다**
- **5. 살아있는 한국 코미디의 역사로 기억되다**
- **#관련 해시태그**
1. 영면 10년, 시대를 풍미했던 웃음의 거장
2015년 8월 31일,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거장 **남성남**(본명 이천백)이 숙면과도 같은 평온한 모습으로 영면한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향년 84세의 나이로 영원한 안식에 든 고인은, 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웃음을 위해 헌신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정한 '웃음의 장인'이었다. 고인의 타계 소식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과 아쉬움을 남겼고, 그가 남긴 족적은 여전히 한국 코미디의 찬란했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유족들은 "주무시다 조용히 가셨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려 그런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그가 남긴 웃음만큼이나 평화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2. '왔다리 갔다리' 춤에 담긴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
고(故) 남성남의 이름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그의 영원한 단짝, **고(故) 남철**이다. 1960~70년대, 두 사람은 '남성남-남철 콤비'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 코미디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들이 선보인 가장 유명한 퍼포먼스는 단연 **'왔다리 갔다리 춤'**이었다. 🕺 단순히 몸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특유의 해학과 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며 전 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춤은 당시의 팍팍한 삶 속에서 대중들에게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하는 청량제와도 같았다. "참 걱정되시겠습니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두 사람은 악극단 무대에서 시작해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안방극장까지 진출하며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두 사람의 호흡은 단순히 짜여진 만담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의 눈빛만 봐도 통하는 깊은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용수 선배의 회고처럼, "두 분은 늘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한 몸처럼 지내셨다**"는 말은 그들의 콤비 관계가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선, 진정한 동반자 관계였음을 엿보게 한다. 그들의 만담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내며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소중한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3. 무대에 대한 끝없는 열정, 그리고 마지막 소망
세월이 흘러도 고인의 **무대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후배 코미디언들의 무대에 함께 서며 세대 간의 벽을 허물었다. 특히 2012년까지 '복고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이어갔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3년까지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특유의 만담을 선보였다. 이는 그가 얼마나 무대와 관객들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
그러나 그의 삶의 마지막에는 웃음 이면에 숨겨진 깊은 슬픔이 있었다. 생전에 고인은 식물인간 상태였던 딸이 다시 걷는 기적을 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딸의 회복**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다. 발인식에서 고(故) 송해는 "딸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는데,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나서 안타깝다"며 그의 마지막 소망을 전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딸을 향한 절절한 부정이 그가 남긴 웃음만큼이나 깊고 진한 울림을 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
4. 콤비의 빈자리, 깊은 슬픔을 남기다
고인의 삶에 드리워진 가장 큰 그림자는 아마도 영원한 콤비였던 남철 선배의 부재였을 것이다. 2013년 남철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남성남은 큰 충격에 빠졌고 건강도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었던 동료의 빈자리는 단순히 직업적 공백을 넘어, 그의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흔드는 듯했다. 엄용수는 "**남철 선배가 떠난 뒤 남성남 선배는 급격히 약해지셨다**"고 회고하며 두 사람의 깊은 유대를 증언했다. 이처럼 그들의 관계는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웃고 울며 삶의 모든 순간을 공유했던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남성남의 별세는 남철의 죽음과 함께, 한국 코미디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더 이상 그들의 무대 위 티격태격 만담과 '왔다리 갔다리 춤'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한국 코미디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겼다.
5. 살아있는 한국 코미디의 역사로 기억되다
남성남-남철 콤비는 그들의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그리고 2010년 **제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이 상들은 단순히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을 넘어, 그들이 척박한 땅에서 한국 코미디의 기틀을 다지고 대중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한 공헌을 인정하는 국가적인 증표였다. 🏅
그들은 코미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장수 콤비**였으며, 동시에 살아있는 무대의 역사였다. 비록 두 거장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웃음과 따뜻한 추억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앞으로도 그들의 이름은 한국 코미디의 빛나는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그가 남긴 웃음이 우리 모두의 삶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란다.